조선체육회의 재건

조선체육회의 재건

해방공간은 비록 미군정의 정책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우리 내부에서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의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집중한 시기였다.

체육인들도 일제의 탄압으로 침체되었던 스포츠를 재건하고자 1945년 9월 5일 임시기구인

조선체육동지회를 조직하여 그 첫발을 내딛었다.

조선체육동지회는 1945년 9월 27일 이상백을 위원장으로 추대해서 한국스포츠의 재건과

새로운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로서 세부적인 조직의 구성을 갖췄다.

조선체육동지회의 세부조직이 총무위원 7명, 평의원 19명, 상무간사 2명, 간사 10명,

사무국은 국장 최감을 중심으로 총무부 4명, 재무부 4명, 기획부 4명, 서무부 4명, 연락부 4명 등

5개 실무부서, 총 20명의 인사로 구성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사무국 내에 실무부서의 존재는 조선체육회 재건과 동시에 실제적인 업무를 볼 수 있는 체제를

갖춘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체육동지회의 체육인과 언론인 등 조선스포츠계의 권위자를 총망라해서 조직을 갖추었다.

그러나 조선체육동지회의 구성원이 대부분 과거 친일적(親日的) 인사들이란 명분을 내세워

7년 전 조선체육회 해산 당시 체육회에 관계했던 김영구, 최재환, 한경택, 이원용,

이길용, 이병학, 박영진 등에 의해 조선체육회 재건준비위원회가 발족됨으로서 갈등이 발생하게 되었다.

체육단체가 양립되자 당시 청년층의 이성구, 정상윤 등이 두 단체를 오가면서 타협을 모색하였고,

1945년 11월 26일 YMCA회관에서 조선체육회 재건총회를 갖는데 성공했다.

이 자리에서 여운형이 조선체육회 11대 회장(1945.11~1947.9)으로 추대되고 부회장 유억겸, 신국권,

이사장 이병학이 선출되어 마침내 조선체육회가 부활되었다.

그러나 집행부 구성에 불만을 품은 일부 인사들이 또다시 YMCA회관에서 조영하를 임시 의장으로 뽑은 후

조선체육회 임원진 개편을 위한 5인 전형위원회를 구성했다.

전형위원회의 이종구, 이규환, 김은배, 이성구, 이영민 등 5명의 전형위원들은 체육인들의

대동단결을 위해 해방과 함께 세계 각처에서 귀국한 체육인들을 규합한다는 뜻에서

직능과 지역별 안배원칙을 제시, 가까스로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임의단체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지역별 안배를 살펴보면 일본계에서 이상백, 유럽계에서 민원식, 이운용, 중국계에서 안원생,

신기준, 미국계에서 박원규, 최능진 그리고 직능별로는 여성계 김신실, 어학회 이극로, 의학계 조병학,

법조계 정건영, 국내 체육 인사로는 김영구, 이병학 등이 추천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듬해인 1946년 2월 26일 조선체육회는 임원진을 보강하며

그 중 전형위원회의 추천으로 지역별 인사 이운용, 직능별 인사 김신실, 이극로, 국내 체육인사 김영구,

이병학 등이 선출되었고 이때 영입된 민족 지도자들은 좌·우익을 망라하는 인물들로 채워졌다.

김규식, 안재홍, 김성수, 오세창, 원한경, 이극노, 최규동, 조만식 등이 고문에 추대했고,

재무위원 박영진, 이규현, 임병혁, 김승권, 정운용, 이병관, 명인화, 강영철, 김종선

평의원에 박필호, 강진구, 이병위 서명학, 박명규, 조동환, 이경석, 손기정, 정근영, 남승룡 등이 위촉되어

고문 8명, 재무위원 9명, 평의원 10명, 이외에도 이사장 1명, 상무이사 2명, 이사 9명, 사무국장 1명,

체육부장, 1명, 상무 간사 1명이 아래와 같이 구성되었다.

조선체육회의 구성이 기존의 조선체육동지회 임원 및 사무국 인사들 중에서

박영진, 임병혁, 조동학, 손기정, 이병학, 이종구, 서상국, 김용구, 이윤용 등 9명이 재임용되고

이들을 제외한 조직체계가 신진 인물로 대체되었으며 맡은 직무에도 변동사항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조선체육동지회와 조선체육회는 조직체계 및 임원 수 등의 변화가 있었는데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체육회의 조직은 조선체육동지회의 조직과 같이 평의원, 상무간사, 사무국장직은 그대로 유지하고

재무부를 재무위원으로 변경했고 고문, 이사장, 이사, 체육부장직을 신설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전체 구성 인43명으로 축소하여 보다 명확한 체계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조선체육회의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조선체육회를 통해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므로 1946년 4월 15일조선체육회는

정치적 중립과 체육회의 자주성을 강조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朝鮮體育會는 3천만 민중의 체육을 지향하는 대표기관인 동시에 우리들의 公器이다.
그러므로 어떤 개인이 체육회도 아니요, 1개 단체에 종속된 체육회도 아닌 것이다.
만약 체육회의 회장이나 간부로서, 정치적 색채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이는 개인적 문제이고
체육회로서는 何等관계할 바 아닌 동시에 체육회 자체가 정치적 색채를 띠는 것은 절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체육회는 그 不偏不黨 이에 엄명한다(한국스포츠진흥회한국체육백년사 편찬회, 1981: 226).

참조문헌 : 파워볼안전사이트https://wastecapne.org/

댓글 남기기